선물 CFD를 취급하는 딜러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5월 3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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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RA 규정 5250조 a) FINRA 회원이나 회원과 관련 있는 사람은 증권 발행인이나 판매와 관련 있는 누구에게서도 증권 가격을 제시하거나 마켓메이커 역할을 하거나 그와 관련된 일을 한 대가로 직간접적으로 보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

선물 CFD를 취급하는 딜러

한준희 해설위원 가장 예리한 객관적 분석을 하는 선물 CFD를 취급하는 딜러 해설자 입니다.카타르 4개월 앞두고 2진 국내 K리그 선수로 구성된 선수들 이지만 일본전 패배로 충격은 쫌 받았네요 .한국 축구의 문제점 거침없이 편안하게 예기해주세요 스포티비뉴스=허윤수 기자] 벤투호가 또다시 일본에 무릎을 꿇은 가운데 스포티비 한준희 해설위원이 문제점을 진단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대표팀은 27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의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일본과의 최종전에서 시종일관 끌려간 끝에 0-3 완패를 당했다. 대회 4연패가 좌절된 한국은 최근 연달아 패하는 한일전 흐름도 뒤집지 못했다. 특히 벤투호는 지난해 3월에 이어 다시 일본에 0-3 패배의 쓴맛을 봤다. 이날 벤투 감독이 추구해왔던 후방 빌드업은 일본의 압박에 철저하게 분해됐다. 중원은 사라졌고 창끝도 무뎌졌다. 후반전에만 3골을 내준 끝에 0-3 패배라는 결과를 받아들었다. 한 위원은 28일 ‘스포티비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가장 큰 문제는 상대의 조직적이고 빠른 전방 압박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볼 간수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벤투호가 빌드업을 근간으로 하지만 사실상 빌드업이 약하다는 것도 큰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대회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A매치 기간에 속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자국 리그 선수를 중심으로 해 선수단을 꾸릴 수밖에 없었다. 한 위원은 “한국의 동아시안컵 멤버는 2진이었다. 일본은 3진에 가까웠다”라면서 “이런 경기력 차이는 한국과 일본의 선수층 선물 CFD를 취급하는 딜러 간격이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를 들게 한다”라고 말했다. ▲ 벤투호는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일본에 0-3 패배를 당했다. ⓒ대한축구협회선수 선발에 대해 아쉬움도 전했다. 꾸준히 언급되던 주민규(제주유나이티드), 홍정호(전북현대)를 차치하더라도 양현준, 김대원(이상 강원FC), 이승우(수원FC), 신진호(포항스틸러스) 등 충분한 기량을 보인 선수가 많았지만, 벤투 감독의 선택을 받진 못했다. 한 위원은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벤투 감독의 선택과 판단을 존중받아야 한다. 전혀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K리그에서 더 나은 폼을 보이는 선수들이 제외된 건 아쉬운 대목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벤투 감독은 중앙 수비수로 나섰던 권경원(감바 오사카)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진 배치하는 깜짝 카드를 꺼냈다. 그러나 상대 압박에 고전했고 효과는 없었다. 한 위원은 “팀 사정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섣불리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손준호(산둥타이산)가 빠졌고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백승호(전북현대)의 컨디션도 알 수 없었다”라며 판단을 유보했다. 그는 “권경원 한 명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한 건 잘 통하지 않았다. 전체적인 흐름에 있어서 전술이나 포메이션 변화에도 다소 문제가 있었다. 임기응변, 융통성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한 건 아쉬운 대목이다”라며 부족했던 대처 능력을 말했다.

알라바마에서 현채 존버해서 얼마전 영주권 받았습니다.최근 모 중견그룹 계열 회계 시니어 선물 CFD를 취급하는 딜러 매니저 제안을 받았습니다.오퍼레터에 급여, 스톡옵션, 베네핏은 나쁘지 않게 받아냈습니다.그런데 제가 인사업무도 초기에 담당해야 한다는 제안/통보를 받았습니다. (공장 짓는중)근데 까보니까 4베드 사택에 6명 직원을 넣어서 운영할 거라고 이미 렌트계약도 해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로컬이라 사택 안가고 가족이랑 이사와서 지내는거 고려중)이런 회사면 아무리 제 처우가 좋아도 거르는게 맞겠죠?알라바마에서 주재운/J1인턴 합숙소 운영하는 회사들 대부분이 하는 짓거리(?)들이 있어서 다시 고민하게 되네요.

나스닥 ETF, 해외주식 첫발을 레버러지 3배인 TQQQ로~ 미친~

해외주식을 약간이라도 알고 있는 투자자라면 주식 쌩초짜인 사람이 레버러지 3배상품으로 시작한다면 아마도 미친 X 소리가 저절로 나올 수 있다.

사실 1달전만 해도 주식투자를, 그것도 해외주식이라니, 아니 그런데 ETF 상품이라니 조금 안심은 되지만. 헐 3배 레버러지 상품인 TQQQ라니~~ 쫄딱 망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말이야.

TQQQ 상품이 무언지 잘 모르는 분들도 있으므로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 기술주들이 상장되어 있는 나스닥 시장에서 주요종목들로 구성된 나스닥100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이다. 실제 나스닥의 움직임을 따라서 투자하는 일반 상품은 QQQ상품, 2배의 변동성에 투자하는 QLD상품, 3배 변동이라는 극악의 템인 TQQQ로 구성되어 있다.

한마디로 안전템은 QQQ 주식이고 극악템은 TQQQ 템이다. 우상향으로 올라만 간다면 당연히 TQQQ에 투자해 큰 이득을 노려볼 수 있지만 자기 뜻대로 되지 않고 우하향을 한다면 빈털털이가 되는 안성맞춤 상품이 바로 TQQQ 이다.

왜 TQQQ를 투자했니?

한달전쯤 여동생이 카톡과 전화를 통해 오빠네도 돈벌어서 부자되야지. 언제까지 그렇게 쪼쫄하게 살려고 해. 하면서 TQQQ와 TMF를 적당한 비율로 섞는 리밸런싱 투자를 권유해 왔다.

응? 미안. 난 다단계상품은 취급안해! 안녕~ 하면서 설연휴에 부모님집에서 만나 다시는 이런 나쁜 템을 선물 CFD를 취급하는 딜러 가족들에게 유혹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오빠 그거 아냐. 이건 직접 증권회사에 계좌만들고 오빠가 사고 파는거야. 다단계 노노노~~

그러면서 이 상품이 왜 좋은지 간단히 설명하면서 보내준 자료를 보라고 한다. 거두절미하고 리밸런싱 상품은 다음과 같다는게 그 설명이었다.

아~~ 가벼워도 너무 가벼운 팔랑귀를 갖고 있는 나는 결국 여동생의 마수에 빠져들고 TQQQ 리밸런싱을 시작하였고 열심히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TQQQ 리밸런싱은 뭐임?

한마디로 지난 8년동안 굴곡은 있었지만 꾸준히 우상향을 실천해 온 나스닥지수 3배 레버러지 상품에 장기적으로 10년동안 투자를 해서 큰 수익을 만들자는 말이다.

더 간단히 설명하면 나스닥은 주식시장 ETF이므로 변동성이 크고 이런 불안정감을 상쇄하는 템으로 미국의 장기국채상품으로 같은 3배 레버러지인 TMF를 믹싱해서 투자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졸라 어렵다. 실제 나도 어려워서 여기 저기 문의하고 답변들을 보면서 공부를 해보았다. 그런데 그게 아주 나쁜 망템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장 좋은 점은 남한테 투자를 위탁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직접 공신력있는 나스닥 ETF라는 주식을 사고 팔면서 큰 자본금없이 10년동안 적립식으로 투자를 한다는 점이다. 초기에는 단돈 500만원+50만원을 투자하면 된다. 그것도 내가 계좌를 튼 증권사에 예치해서 사면 된다. 그리고 매월 50만원씩 10년동안 불입을 해서 TQQQ와 TMF 주식을 사면 되는 것이다.

10년간 총 투자액은 500만원+6,000만원이므로 6,500만원을 투자하게 되며 이런 금액으로 투자를 하면 10년후에는 약 10억원이 된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이다. 단, 조건은 있다.

지난 8년처럼 앞으로도 10년동안 미국 나스닥시장이 계속해서 우상향으로 성장해야 한다.

위와 같은 명제가 달성되면 6,500만원이 약 11억원, 에누리 팍팍쳐도 10억원 이상이 된다는 설명이고 실제 수익률 테스트를 해봐도 꽤나 많은 금액이 달성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8년전으로 돌아가서 500만원+매월 50만원씩 입금해 TQQQ와 TMF 상품에 8:2 또는 7:3 비율로 투자를 하면 8년간인데도 60~70만달러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동안이 지난 8년처럼만 나스닥이 성장하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 10년간을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미국경제가 선물 CFD를 취급하는 딜러 중국의 거센 파도에도 앞으로 10년간 경제패권을 유지하면서 전세계 기술주들이 속속 나스닥에 입성하고 계속 성장한다면 비록 10억원이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 7~8억까지는 갈 수 있지 않을까?

꿈은 장밋빛으로 원대하게 만들어가자. 물론 쫄딱 망할 생각도 해야겠지만 비트코인 폭락장세에서 보유중인 알트코인들이 모두 무려 20토막이 났어도 살아남아 지금까지 연명하고 있는 향항이 아닌가. 그래 난 운이 드럽게 나쁜 녀석이지만 가늘고 길게 버티는건 자신이 있잖아. ㅋㅋㅋ

왕왕초보 주린이가 TQQQ로 시작한지 1달이 약간 안되었지만 투자원칙은 사라져버렸다. 내가 뭘 사면 하필 그게 바로 최고점!! 도대체 이 원칙은 언제쯤 내 뇌리에서 사라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여동생의 유혹에 빠져 거금 50만원을 입금하고 처음 TQQQ를 2/17에 구입했는데 구입단가는 111달러였다. 그런데 이게 역대 최고가액였고 다음날부터 하염없이 미끄럼을 타면서 추락을 거듭했고 어제 날짜로 종가가 84달러 수준까지 꼴아박았다. 대략 봐도 25%가까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자랑한다.

이대로 좌절할 내가 아니다. 남는 돈이 있을때마다 꾸준히 입금을 했다. 첫 500만원+매월 50만원 원칙은 개나 줘버린지 오래다. 초기 500만원도 TQQQ가 충분히 조정을 받으면 그때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는데 현실은 논에 물대듯이 찔끔찔끔 돈을 넣고 떨어질때마다 구입을 했는데 TQQQ는 계속 더 떨어져 버린다. ㅋㅋ

현실은 시궁창인가. 수수료율 인하를 위해 잠시 코인계를 떠나 온 3000만원에서 무려 1천만원을 TQQQ에 쏟아 부었지만 결국 어제 종가기준으로 -5%를 쳐맞았다. 역시 안될놈은 어쩔 수 없나보다.

변동성이 큰 TQQQ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리밸런싱 상품은 TMF 도 지난 몇개월간 계속 떨어지고 있어 -11%를 당한채로 손절했다. 손절의 귀재다.

대안으로 선정한 국제은선물 ETF주식으로 2배 레버러지 상품인 AGQ를 구입하면서 8:2 비율로 만들어주고 있는데 얘도 구입하는대로 떨어지고 있어 또 -11%를 선물 CFD를 취급하는 딜러 맞았다. -11%에 무슨 원한이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너무한거 아닌가 싶다. ㅎㅎㅎ

나는 오랫동안 시카고의 자기자본 거래 기업들(proprietary trading firms)에 몸담았다. 내가 일한 회사들은 주로 파생상품 거래소의 마켓메이커 역할을 했다. 이들은 시카고 상품거래소(CBOT), 시카고 상업거래소(CME), 시카고 옵션거래소(CBOE) 등 파생상품 거래소에서 옵션 계약과 선물 계약 등 상품을 구매자와 판매자가 거래할 수 있게 하고, (수요와 공급이 안정적으로 만나 가격이 형성되는) 질서 있는 시장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마켓메이커의 기능과 역할, 미국 주요 거래소에서 마켓메이커가 따라야 하는 규정, 이를 바탕으로 ICO(암호화폐 공개)와 STO(증권형 토큰 선물 CFD를 취급하는 딜러 발행)를 포함한 암호화폐 자산에 관한 규정을 어떻게 마련해야 좋을지 포괄적으로 논의해 보자.

질서 있는 시장이란?

모든 거래소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주식, 선물, 옵션, 혹은 거래 가능한 어떤 상품이건 간에 자산이 안정적으로 거래되는 ‘질서 있는 시장(orderly marketplace)’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질서란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균형이다. 즉, 구매자와 판매자가 적정가치를 바탕으로 형성된 가격을 기준 삼아 공정하고 공평하게 거래를 진행하는 시장을 질서 있는 시장이라고 부른다. 거래소가 질서 있는 시장을 구현하는 방법의 하나는 적정가치를 토대로 거래 가격을 제시하고 그 대가로 특전을 얻는 마켓메이커를 직접 지정하거나 인가하는 것이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마켓메이커는 장이 열린 내내 자산을 사고팔려는 이들에게 가격을 제시할 의무가 있다. 가격이 붙지 않은 자산은 거래될 수 없기에 시장이 설 수 없고, 자산의 가격이 불안정하면 시장도 덩달아 불안해진다. 마켓메이커가 제 역할을 해야만 거래소는 고객들에게 언제든 합리적인 가격에 자산을 사고팔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다.

물론 마켓메이커 없이도 장이 설 수 있고, 그때그때 가격이 형성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 의무적으로 가격을 제시하고 거래에 필요한 유동성을 공급하지 않는 한 고객들이 자산을 합리적인 가격에 거래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지고, 거래소에 대한 신뢰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거래하려는 자산의 적정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AAA라는 주식이 가장 마지막에 거래된 가격이 10원이고, 현재 시장의 유동성이 어느 정도 충분하다면 나는 9.95/10.05원에 시장을 조성하고자 할 것이다. 싸게 사고 비싸게 판다는 기본 원칙을 적용하면 9.95/10.05원이란 곧 AAA주식을 9.95원에 사겠다는 주문과 10.05원에 팔겠다는 주문을 선물 CFD를 취급하는 딜러 동시에 낸다는 뜻이다. 실제 주식시장이라면 워낙 빠르게 거래가 진행되므로 매도ㆍ매수 호가의 차이를 뜻하는 스프레드가 이렇게 커서는 거래가 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거래가 하루에 한 번이나 두 번만 일어난다면 이런 주문을 내도 실제 거래가 체결되고 시장이 조성될 수도 있다.

거래소 고객은 당연히 마켓메이커를 통해 거래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AAA 주식 100주를 10.01원에 사달라는 식의 지정가 주문을 낼 때도 마켓메이커를 거쳐야 한다. 마켓메이커는 주문받은 거래를 체결하기 위해 시장 안의 다른 참여자들과 내놓은 가격을 두고 경쟁하게 된다.

구체적인 의무

앞서 마켓메이커가 해야 할 일, 즉 가격을 제시해 시장을 조성하고 거래를 체결하는 일에 대해 ‘의무(obligation)’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다만 마켓메이커와 시장에 참여하는 거래자에 관한 규정은 거래소마다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시카고 옵션거래소 규정 8조 7항(마켓메이커의 의무)은 마켓메이커의 마켓메이킹 의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8조 7항 b-iv

마켓메이커는 옵션 계약의 가격을 공정하게 매기기 위해 거래소가 자산별로 선물 CFD를 취급하는 딜러 정한 매도ㆍ매수 호가의 차이 요건에 따라 주문을 내야 한다.

8조 7항 d-ii(B)

마켓메이커는 지정된 옵션 계약 상품의 60%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주문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위의 조항들은 시카고 옵션거래소가 마켓메이커들에게 부과하는 의무 가운데 일부로, 규정 전문을 보면 전자 거래와 플로어 거래 규정을 비롯해 옵션 거래소에서 시장을 질서 있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다. 그러나 핵심을 다시 추리면 마켓메이커의 핵심 역할은 거래소가 공정한 가격에 거래를 유치하고 질서 있는 시장을 만들 수 있도록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다.

토큰 시장

다른 자산과 마찬가지로 암호화폐 토큰의 적정가치를 파악해 가격을 제시하고 질서 있는 시장을 만들면 토큰 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부터 말하자면 현재 암호화폐 토큰으로는 질서 있는 시장을 만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에 관해서는 별도의 칼럼을 써야 하므로 이 글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최근 토큰을 발매하려는 이들과 토큰 관련 기술자, 토큰 거래소 등이 필자와 필자가 일하는 회사에 토큰 시장을 조성하는 마켓메이킹에 관해 문의해왔다. 증권형 토큰(STO)이든 여느 ICO 방식으로 유틸리티 토큰을 판매하겠다는 계획이든 마켓메이커가 되어주면 거래소나 토큰 발매자가 우리에게 직접 보상을 지급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우리는 이 제안을 전부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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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토큰 시장에는 마켓메이커로 참여하지 않았을까? 아니, 참여할 수 없었을까?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 두 가지를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윤리적인 문제다. 증권이나 자산을 발행하는 이가 마켓메이킹에 대한 보상을 직접 하게 되면 이해상충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마켓메이킹의 핵심이 적정가치에 최대한 가깝게 주문을 내 적정가치와 거래 가격이 최대한 비슷하도록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것인데, 토큰을 발행하는 이가 마켓메이커에게 보상을 지급하면 마켓메이킹 행위는 적정가치보다 토큰 발행 주체의 이윤에 초점을 맞추게 될 소지가 있다. 우리는 이런 윤리적 딜레마를 겪게 될 것이 뻔한 제안을 수락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좀 더 자명한데, 마켓메이킹의 금전적인 대가를 직접 누군가에게 받는 것은 증권업계의 규정을 명백히 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업계의 자율 규제기구인 FINRA 규정 5250조는 이런 행위를 명백히 금지하고 있다. 금융권의 브로커딜러 대부분은 FINRA 회원이다.

FINRA 규정 5250조

a) FINRA 회원이나 회원과 관련 있는 사람은 증권 발행인이나 판매와 관련 있는 누구에게서도 증권 가격을 제시하거나 마켓메이커 역할을 하거나 그와 관련된 일을 한 대가로 직간접적으로 보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이 규정은 보다시피 브로커딜러나 브로커딜러 관계자는 물론 마켓메이킹에 관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증권을 발행하거나 판매하는 이에게 (마켓메이킹의 대가로) 보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증권이 토큰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필자와 필자가 일하는 회사는 이 규정을 철저히 따랐을 뿐이며, STO와 ICO 업계 전체도 이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헤지펀드나 개인 투자자 중에는 FINRA 회원이 아닌 이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이들이 자신이 속하지도 않은 기구의 규정을 따라야 하는 의무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공정하고 질서 있는 시장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규정이다.

지금껏 진행한 ICO 가운데 마켓메이커 역할을 한 이들에게 토큰 발매자가 직접 보상을 지급한 경우가 있을까? 필자가 여러 사람에게 들은 사례만 더해도 ICO 열풍이 불었던 2017년과 2018년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는 지금 당장 멈춰야 하는 관행이다. 누군가 시장에서 거래를 체결하는 것만으로 보상을 받는다면 대중에게 그 시장의 가격이 적정가치를 토대로 형성된 가격이라고 무슨 수로 설득할 수 있을까? 가격이 어느 선 이상으로 유지되면 마켓메이커가 보너스를 받았는지 의심하는 이에게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

원래는 이 칼럼의 제목을 필자가 STO 업계에 있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이메일의 제목을 그대로 따온 “마켓메이킹 가격 문의(Market Making as a Service)”로 정했었다. 이메일을 보낸 이는 필자와 필자가 일하는 회사가 토큰을 만들어 판매하려는 이들을 위해 마켓메이킹을 서비스 형식으로 제공할 의향이 있다면 자신이 관심 있는 업체들을 소개해줄 수 있다고 알려왔다. 금융권에 조금이라도 발을 담근 이라면 상상도 못 할 제안을 태연히 해오는 이를 보며, 필자는 특히 초기의 암호화폐 트레이더 가운데는 전통 금융권 경험이 없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절감했고, 동시에 시카고의 마켓메이커 커뮤니티라는 것이 전체 금융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보잘것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암호화폐 업계가 누구보다 발 빠르게 변화하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업계라면, 실제로 기존 증권거래소의 규정이나 원칙 가운데 기본적인 윤리 강령, 공정거래, 질서 있는 시장 등 좋은 것들이 정말 ICO나 STO 시장에 적용되고 있다면, 본보기 삼아 가장 먼저 뿌리 뽑아야 할 관행이 바로 토큰 발매자나 판매자가 마켓메이킹의 대가를 직접 지급하는 관행이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왜 아무나 마켓메이커가 될 수 없는 걸까?

그렇다면 왜 거래소 고객이나 헤지펀드, 아니면 시장 상황을 잘 아는 트레이더도 마켓메이커가 될 수 없는 걸까?

거래소 규정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다. 이 글의 서두에 소개한 대로 거래소의 기본적인 목표는 취급하는 자산이 안정적으로 거래되는 질서 있는 시장을 만드는 데 있기에 아무에게나 마켓메이커를 맡기지 않는다. 시카고 옵션거래소의 규정 6조 8항은 제목부터 명확하다.

미국의 거의 모든 거래소에는 아무나 매도ㆍ매수 호가 주문을 동시에 내 가격을 형성하고 시장을 조성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시카고 옵션거래소의 6조 8항과 같거나 비슷한 조항이 있다.

Autodesk CFD: 복잡한 액체, 가스 및 공기 시스템 엔지니어링을 위한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해석 전문가들은 Autodesk® CFD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액체 및 가스의 흐름을 지능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전산 유체 역학 시뮬레이션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CFD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다음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를 통해 설정 사용자화

열 전달 및 유체 흐름 설계 해석

API를 사용한 스크립팅 및 자동화 지원

Autodesk CFD 개요 동영상(3분 18초)

Autodesk CFD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

에너지 효율성 개선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효율성을 개선하는 중요한 설계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고장 위험 감소

설계 프로세스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해결하여 제품 및 시스템의 작동 수명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실물 프로토타이핑 비용 최소화

시뮬레이션을 통해 디지털 프로토타입을 제작하여 실물 모형 제작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Autodesk CFD로 수행할 수 있는 작업

Autodesk CFD 유체 흐름 시뮬레이션 결과를 설계 연구 환경 내에서 비교

유체, 열, 동작 해석 정보에 기반한 시스템 설계

Autodesk CFD 소프트웨어는 엔지니어에게 시스템 설계 최적화를 위한 강력한 도구를 다양하게 제공합니다. 유체 흐름과 자유 표면 이동을 시뮬레이션하고 제품 설계를 위해 열 영향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Autodesk CFD를 Autodesk Revit 건물 설계 기능과 함께 사용하면 시뮬레이션을 통해 HVAC 배치를 최적화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산업용 응용프로그램을 통해 설계 최적화

Autodesk CFD 소프트웨어는 다음과 같은 작업을 위한 시뮬레이션 기능을 제공합니다.

  • 전자 냉각
  • 데이터센터 설계
  • 조명 설계
  • 기계 및 밸브
  • HVAC 설계를 위한 AEC/MEP

두 대의 컴퓨터로 작업 중인 Kytola Instruments 회사 직원

"[Autodesk CFD]를 사용하면 실물 프로토타입 작업이 선물 CFD를 취급하는 딜러 크게 줄어듭니다."

- 이스모 바라니에미(Ismo Vaaraniemi), Kytola Instruments 제품 개발 엔지니어

시작 따옴표가 있는 말풍선

"[Autodesk CFD]는 직관적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학습만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자피 반 데르 베스트후이젠(Japie van der Westhuizen), S-PLANE Automation (Pty) Ltd. 수석 하드웨어 개발 엔지니어

FAQ(자주 묻는 질문)

Autodesk CFD는 어디에 사용되나요?

Autodesk CFD 소프트웨어는 전산 유체 역학을 통한 3D 유체 흐름 및 열 전달을 시뮬레이션하는 데 사용됩니다.

Autodesk CFD의 주요 사용자는 누구인가요?

Autodesk CFD 소프트웨어는 제품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유체 시뮬레이션을 필요로 하는 기계 엔지니어가 사용합니다. 건물 HVAC 설계의 효율성을 시뮬레이션하는 도구를 필요로 하는 HVAC 시스템 엔지니어도 Autodesk CFD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오토데스크 소프트웨어를 여러 컴퓨터에 설치해도 되나요?

Autodesk CFD 소프트웨어 서브스크립션을 구매하면 최대 3대의 컴퓨터 또는 다른 디바이스에 설치할 수 있습니다. 네임드 유저는 한 번에 한 대의 컴퓨터에서만 로그인하고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계약(영문)을 선물 CFD를 취급하는 딜러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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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선물 Korean Canadian Life ^^

노트북을 열어 인터넷을 접속해도 , TV 나 신문을 봐도 너도나도 국화빵같이 판에박은 불경기 , 불황이야기 뿐이다 . 철옹성같던 미국 자동차 빅 3 도 풍전등화상태이고 캐나다에 있는 자동차조립과 부품회사들도 도미노 현상으로 속속 공장문을 닫고 있다 . 실업률이 사상 최고로 올라가고 있으며 빅쓰리가 문을 닫으면 캐나다에서만 58 만명이 직장을 잃을것이란 암울한 뉴스가 인터넷 뉴스보드 상단에 뜨고 있다 .

가뜩이나 한미비자면제발효에 따라 캐나다 동포경제가 위축되고 있는데다가 설상가상으로 불황이 겹쳐서 직장인들도 조업단축 , 감원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 비즈니스를 하는 분들도 불경기에 다른 매상감소로 인하여 한인 커뮤니티에도 어느때보다 진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선물 CFD를 취급하는 딜러 있는듯 하다 . 부동산 매매도 얼어붙고 투자등 경제 활동도 극도로 약화되어 위기의식이 어느때보다 팽배해 있는 이 때 본지 편집진이 장고에 빠져들었다 . 과연 누구를 취재하여 한인비즈니스 업계에 희망을 불어 넣을 롤모델로 내세울 것인가 ?

텔레파시가 이런건가 보다 . 전날 밤새 서로 숙고하다가 아침 편집회의를 시작 하자마자 발행인과 본 기자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터져나온 이름 , “ 그래 이사람이야 , 정창헌 !!”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역경속에서 당당히 사업이란 이렇게 하는거라고 성공신화의 본을 보여 주고있는 사업의 천재 , 그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떠오른것이다 .

침체되어가는 동포비즈니스업계에 뭔가 희망을 주는 소식을 전해주자는 이심전심 ( 캐나다판 창간이래 찰떡 호흡을 맞춰 온 본지 편집진은 “ 김심양심 ” 이라고 해야 맞겠다 ) 이 새해 첫지면을 대표할 커버스토리로 정창헌 (59 세 ) 한인상공회의소 이사장으로 확정하고 발길을 토론토 동쪽 인근도시 피커링으로 돌리게 되었다 . 캐나다 동부지역 에서 주류사회와 한인사회를 위하여 다양한 봉사활동과 후원자로 잘 알려진 년매출 1 억불 성공신화의 주인공 , 이번에 새롭게 재출범한 한인상공회의소 이사장이자 한인 최초로 도요다 딜러 두개를 120 명의 종업원들과 함께 모범적으로 운영하여 일취월장 성장하고 있는 정창헌사장의 인생역전 성공스토리를 취재해 본다 .

그냥 먼발치서 동포인터넷 사이트나 신문등에서 잠깐씩 스쳐지나가는 뉴스로만 듣고 막연히 한인사회에 봉사와 기부를 가장 많이 하는 독지가 중 한분으로만 알고있던 정 이사장 . 막상 취재에 들어가 보니 백인시장으로부터 현지 지역발전을 위해서 정치 좀 해 보라고 주류사회에서 러브콜을 권유받는 등 타민족에게도 존경받는 사업가 정창헌은 이 불황의 시대에 자타가 인정하는 우리가 배우고 본받아야할 사업의 천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인근 오샤와 GM 자동차공장이 불황으로 한달간 휴업상태여서 그런지 붐비던 하이웨이 401 이 한산해진듯 토론토 동부 경계선과 맞닿아 있는 피커링까지는 불과 30 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 언제봐도 정중한 태도와 친절한 미소를 머금은 정창헌 이사장이 김원동 발행인과 함께 그의 사무실을 찾아간 구면의 본 기자를 반갑게 맞아준다 .

1966 년 약관 16 세인 정창헌 학생은 고국을 떠나 배를타고 농업이민을 떠나는 부모님과 가족들을 따라 홍콩 , 동남아 , 남아공 , 브라질 등 각 나라의 항구에 기착하며 두달반동안 항해를 했다 . 선상에서 30 여 가구의 이민 동기생 (?) 어른들에게 미리 공부해 두었던 스페인어 강의도 하는 등 소년 정창헌에겐 나름 재미있었던 추억으로 회상된다 . 홍콩에 기착했을때 한개에 $1 하던 시계를 $10,000 어치나 사서 후에 목적지에 도착해서 몇배값에 팔 계획을 세울 정도로 사업감각이 있었던 정창헌 소년 ! 겨우 파라과이에 도착 , 이민자의 삶을 시작 하였으나 아무리 60 년대 얘기라지만 코브라가 득실거리는 밀림속에서 농사를 지으라니 ? 이민을 알선 했던 당시 한국정부나 초청한 파라과이 정부나 한심했던건 피장파장이 었던듯 하다 . 결국 불가능한 농사는 때려 치우고 시장에 가서 형들과 함께 홍콩에서 사왔던 시계를 가가호호 방문 판매 하였다 . 현지인들이 문을 ” 쾅 ” 닫아 걸며 천대할때 한참 사춘기 학생이었던 그는 눈물어린 빵을 먹으며 좌절하지 않고 오뚜기처럼 꿈을 안고 다시 뛰었다 . 여러가지 쓰라 렸던 경험과 어느날 한 시골 아줌마가 팔찌를 사주며 격려할땐 또 다른 눈물을 흘리며 “Yes I Can !”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힘을 얻었다 .

취재 중간 중간에 본 기자가 가졌던 의문이 저절로 풀려가고 있음을 느꼈다 . 머리속에 정리되어지는단순한 결론 , 즉 성공요인을 생각해 보니 핵심은 이러한 특유의 포기하지않고 좌절하지않는 도전정신이 오늘의 그를 만들어 준 영양분이 되었고 큰 사업가로 대성하기 위한 원천이 아니었을까 ?

그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거쳐 캐나다에 정착하여 현재 120 명의 종업원들과 함께 두개의 도요다딜러샵을 운용하고 있으며 년 매출 1 억불을 올리고 있다 . 년간 수천대의 자동차를 캐내디언들과 한인들에게 판매하는 사업가로 우뚝선 자랑스런 의지의 한국인이다 .

아르헨티나에서 패밀리비즈니스로 10,000 스퀘어 피트정도의 그로서리 스토어를 운영할때도 18 세의 그는 새벽 3 시에 기상하여 도매상에서 장을 보며 너댓개의 무거운 박스를 매고 뛰면서 트럭에 싣는등 힘든일을 도맡아 했었다고 한다 .

고교졸업후 21 세때 아버지께 비교적 한인이 더 많다고 막연히 듣고있던 토론토로 보내달라고 간청했다 .

어렵게 허락을 맡아 1971 년 3 월 어느날 늦겨울의 폭설속에 아무도 아는이 없는 토론토 피어슨국제 공항에 도착하였다 . 비행기값을 내고 수중에는 남은 200 달러가 전재산이었다 . 고맙게도 후일 목사가 된 한 크리스쳔 동포의 집에서 기거하면서 직업을 갖기위해 이곳저곳을 방문하며 헤매었다 . 그나마 조금 가진돈이 거의 다 떨어지자 그 추운 겨울에 마지막 남은 돈으로 25 달러짜리 중고잠바 하나 사서 입고 지하철요금을 아끼기위해 걸어다니며 이곳 저곳 문을 두드렸다 . “ 이대로 죽을 수 없다 ” 포기하지 않고직업을 구하던 중 어느독일인이 운영하는 바디샵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때 ‘ 용접할줄 아느냐 ?’ 고 묻길래 이민을 준비하며 한국에서 6 개월 학원에서 배워 본 경험이 있던 청년 정창헌은 “Yes, I can ” 대답하고 서투른 용접공으로 토론토에서 첫 직업을 갖게 된다 .

당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급 $ 1.25 의 저임금에도 빵값 해결만도 감사하며 언젠가 오너가 되리라는 꿈을 가지고 내일처럼 열심히 일했다 . 동료캐내디언 직원들은 점심때 편하게 배달되는 샌드위치와 콜라를 먹고 마셨지만 절약해야만 했던 청년 정씨는 하숙집에서 싸 온 날짜 지난 값싼 식빵에 치즈만 넣은 샌드위치를 먹으며 수돗물로 음료수를 대신해 가며 힘든일을 했었다고 한다 . 한쪽 구석에서 눈물 흘리 면서도 스스로에게 다짐 , 또 다짐하며 성공에 대한 집념을 남몰래 키워갔다 . 점차 기술도 늘고 주인보다 일찍 출근하여 악착같이 일하던 그가 더 나은 곳으로 가려하자 , 사장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간당 $6 을 제시하며 그를 붙잡았다 .

형편이 좀 나아지자 그동안 접어두었던 향학열이 다시 솟아나 주경 야독으로 선물 CFD를 취급하는 딜러 12 학년과 13 학년을 마치고 라이어슨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 차체메카닉 자격도 따고 조그만 한인경영 바디샵으로 옮겨 일하다 매출이 저조한 그 사업체를 지독하게 (?) 모은 단돈 오백불로 인수하여 초라하게 작은 규모지만 그가 소원했던 대로 자기사업을 시작하기에 이르른다 . 정 사장은 특유의친화력과 성실성 그리고 남미에서의 그 어려웠던 세일즈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전감각을 동원하여 각 딜러를 상대로 마켓팅에 주력하였다 . 한번에 성사될리가 있었겠는가 ? 처음 모르는 동양 인이 일감을 달라고 하자 쳐다보지도 않던 거래선에 커피와 도넛 을 사가지고 반복해서 찾아가 끈질기게 설득해 나갔다 . 여러차례 찾아가 낯이 익자 쉽게 고치기 어려울 정도의 폐차직전의 중고차를 주면서 고쳐보라고 첫 오더를 주더니 밤을 세워 반짝반짝 하게 만들어 다음날 아침에 갖다주자 “ Miracle ! ” 하고 깜짝 놀라며 그제서야 큰 오더를 주기 시작했다 .

저렴한 값으로 좋은 품질의 서비스를 신속하게 제공해 나가자 주로 백인들이 운영하는 딜러들과 중고차판매회사들에 소문이 나서 순식간에 사업은 확장되어 나갔다 .

그러나 당시 워낙 저렴하게 해주다 보니 순익은 적었다고 …

더구나 골목길의 협소한 장소에서 운영을 하다 보니 성장에 한계를 느껴 본격적으로 미시사가 에 자리를 넓게 잡고 경찰지정 사고차량 전문 바디 샵을 시작했다 . 사고차를 몰고가다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본넷트가 열려 위험했었던 아찔한 순간도 있었으나 6 개월 후에는 단가도 올리고 순익도 늘어났다 . 인근에 땅과 건물도 사고 한국어방송에서 피천득씨 아들 피세영씨와 함께 근무하던 미인성우 강종희씨를 만나 한인사회 광고건을 의뢰하면서 자연스레 가까워져 결혼까지 골인 하게 된다 .

어느 가을날 정사장 부부가 토론토 교외를 드라이브 하다가 멋있는 캐내디언집을 보고 무조건 들어가서 주인에게 “ 참 아름다운 집이다 !” 얘기하니 백인부부가 차 한잔 하자고 붙잡아서 고객이자 친구가 되기도 했다고 회상한다 .

종업원이 70 명으로 늘어나고 24 시간 경찰견인업소로 운영하여 수익을 많이 내자 아파트 빌딩과 주상복합빌딩을 사두었었다 . 새로운 호텔비즈니스를 하기위해 그동안 키워왔던 대형 차량수리업소를 중국계 캐내디언에게 1983 년 매각하였다 .

몇군데 접촉중 온타리오호숫가에 자리잡은 전망좋은곳에 155 개 객실의 “ 인 온더레이크 호텔 ”(INN on THE LAKE) 을 인수하였다 . 4 층의 이 호텔은 당시 유태인이 운영하고 있었으며 그는 새로이 라이어슨대학에서 비즈니스를 공부하며 유명한 포시즌호텔체인 본사에서 컨설탄트를 간부로 채용하여 경영수업도 받았었다고 한다 .

미국 마이애미에서 년중행사로 열리고 있던 미스유니버스대회를 보면서 그는 6 년 연속 대회 개최장소인 40 년 전통의 유명한 SHELBORNE BEACH HOTEL 을 점찍어 두었다가 결국 1993 년 인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 255 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던 마이애미의 최특급 호텔과 캐나다의 호텔까지 두개의 큰 사업체를 경영하면서 많은 수익을 내고 있었지만 사업가 정창헌의 마음속엔 항상 과거 바디샵을 성공적으로 경영하면서 주 고객들이었던 자동차딜러의 사업적인 매력이 떠 오르곤 하였다 . 당시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고객의 동향을 연구하다 보니 스스로 자동차판매를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 , 부서진 차를 수리하는것 보다 신차를 고객에게 판매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고객만족을 주는 사업이 그렇게 매력이 있었던 것이다 .

항상 마음 한켠에 품질좋은 Brand New 카를 판매하는 딜러를 경영하고 싶었던 그는 1988 년 한 지인의 소개로 지역책임자를 만나서 사업계획을 설명하자 그 캐내디언이 잘 보았는지 최초로 한인에게 파격적으로 피커링과 딕시 두개의 딜러쉽을 동시에 승인해 주었다 . 지역사회와의 유대 관계를 중시하는 그의 “ 더불어 살기 ” 철학과 남다른 경영으로 1995 년에 캐나다 280 개 딜러중 최우수상 , 2007 년에 15,011 대 판매달성 , 그리고 2008 년 1 월에 제조국인 일본을 선물 CFD를 취급하는 딜러 제외한 전세계 도요다매장 중에서 최고의 판매수준 인 200,000 점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 볼톤의 기존 Glen Eagle 골프장옆에 신규로 아름다운 18 홀과 80 채의 고급 주택을 건설하기 시작한것도 이즈음이다 .

미국과 캐나다에 걸쳐 호텔 2 개와 자동차 딜러사업에 골프장 건설까지 … 왕성한 사업의 천재 정창헌도 그러나 1990 년초 예상치 못한 북미주 전역에 불어닥친 불황에는 어쩔 수 없었다 . 골프장건설을 중단하고 호텔 고객점유율이 75% 에서 30% 로 내려가는 시점에 정사장도 더 버틸 재간이 있었겠는가 ?

호텔 두개도 모두 은행으로 넘어가고 가지고 있던 부동산을 반값으로 처분하여 겨우 피커링 도요다 하나만을 남겨놓았다 . 이 때가 사업가로서의 그에게 최악의 시련이었다 . 그러나 불면의 밤을 지새우면서도 인내와 기도로서 천주교 신자 정창헌은 하나님께 매달 릴 수 밖에 없었다 .

마음을 다잡고 새출발 하겠다고 기도하고 있던차에 1993 년 마이애미 호텔에서 30 분 거리인 쿠바에 허리케인 앤드류가 휩쓸어 재건이 시급하다는 소식을 접했다 . 스패니쉬 , 영어 , 한국어등 3 개국어를 할 수 있는 그는 스패니쉬 경제권인 쿠바로 날아가서 12 명의 종업원으로 자동차를 판매하며 중고차도 취급하는 딜러를 오픈했다 . 어렵고 불쌍한 그들에게 중고차를 팔고도 수금이 안되는 상황에서 보통 사람 같으면 철수해 버리겠지만 기도하는 정창헌사장에게 보이지 않는 이끌림이 있었다 . “ 도와 주라 ” 하시는 구제사역의 도전을 받은 것이다 . 한민족의 핏줄을 이어가는 멕시코 애니깽 후예들이 쿠바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민 3 세와 4 세까지 찾아 다녔다 . 개인재산을 카스트로정권에 다 뺏기고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가난과 싸우고 있는 그들에게 우선 시급한 옷가지를 지원하기로 하고 토론토로 돌아왔다 . 1998 년 구세군을 통하여 중고의류를 수거하여 20 콘테이너를 보냈는데 어려운 한국인 후예들에게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었지만 공산당치하에서 “ 안된다 , 공평하게 나눠야 한다 ” 고 해서 약속한 분들에게 지원이 안되어 안타까웠다 .

캐톨릭 신부 , 주교들과 함께 정치범 수용소를 방문하여 직접 사랑의 선물을 나눠주고 아이들과 같이 공을 차며 어려운 환경속에서 살아 가는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구제사역을 하며 사랑을 전하는 보람도 느껴보았다고 ….

20 년 이상 도요다 자동차판매회사를 운영하면서 2008 년 1 월 캐나다 전국은 물론 일본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200,000 판매수준 달성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최초의 딜러가 되었다 . 또한 취재 중 표창을 많이 받았다는데 뭐 자료가 없느냐고 재촉하자 , 벽에 걸어 놓을만도 하건만 굳이 책상속에 그냥 넣어둔 앨범을 겨우 찾아 수줍게 꺼내놓는 겸손함 을 보며 본 기자는 잠시 편안하고 온화한 느낌의 인간 정창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

멜라스트먼 전 토론토 시장 , 피커링 소방국 , 구세군 , 듀람교육청 , 한국노인회 워커톤 , “ 유나이티드웨이 , 주의회의원 ( 결손가정어린이 크리스마티 파티주최 ), 푸드뱅크 , 피커링 야구협회등 으로부터 수많은 감사장을 보며 그 바쁜 비즈니스를 경영하면서 언제 주류사회 각계각층에 온정의 손길을 베풀었는지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

인터뷰하면서 완벽한 한국말을 구사하여 전혀 불편함을 못느꼈었는데도 한국을 떠난지 오래되어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한다고 스스로 겸손해 하는 그에게 한국 , 남미 , 북미에서 사업을 경영하며 살아왔던 그에게 3 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건 오히려 사업경영에 큰 장점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니 겸연쩍은 미소를 짓는다 . 정 이사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경영수업을 받으며 그를 돕고 있는 아들과 어린딸을 각각 두고있는 가장이며 평화마라톤 , 워커톤 등 한인사회 봉사에도 앞장 서고 있으며 현재 2008 년에 새로 개편된 한인상공회의소 이사장을 맡아 한인사회에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있다 . 명예욕은 없으며 비즈니스에 더욱 정진하여 자동차딜러경영을 열두개정도로 늘려 경영해 선물 CFD를 취급하는 딜러 보는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 마지막으로 그의 계획을 묻자 그는 한국자동차도 품질이 좋아졌으므로 20 년 이상의 성공적인 딜러 경영을 바탕으로 이젠 우리 한국차로 더 큰 목표를 달성하기를 원하며 나아가 워렌 버핏처럼 자선재단을 설립하여 사회 환원과 불우이웃 돕는일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힘주어 말한다 .

다음 취재원과의 약속으로 취재를 서둘러 마치고 하이웨이를 달리며 모처럼 사업이란 ? 비즈니스란 무엇이고 어떻게 경영하여 성공에 이르는것인가 ? 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 어느 MBA 대학원 경영학강좌보다 값진 정창헌 천재교수 (?) 의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한 성공학 강의를 반추해 보면서 오늘 이시간 비즈니스가 어렵다고 자포자기하는 동포들이 있다면 그의 사업경영 스토리를 다시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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